옛 직장 동료를 번화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길거리에서 여자 뺨을 때리는 남자를 봤다. 약속된 장소에서 나를 픽업하러 오기로 한 상황이라 멀어져 가는 두 남녀를 따라가기도 용이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멀리가지 않고 인근에서 티격태격하며 다시 뺨 때리는 모습이 보였다.
부부사이인 듯도 보였다.
'사진을 찍을까, 동영상을 찍어둘까, 참견을 해볼까'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부부사이라면 개인사인데 굳이 내가 관여한다는 것이 주제넘는 행동인 것 같아서 일단 지켜보았다.
그렇게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데 이 남자분의 폭력이 갈수록 격해지는 것이었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뒤돌아보기는 해도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구두까지 벗어서 여자 얼굴을 가격하는 폭력을 보고 도저히 견디질 못하고 달려갔다.
따: 아저씨, 왜 여자를 때리세요.
아: 부부 사이 일이니깐 빠지세요.
따: 아무리 부부사이라고 하더라도 여자를 그렇게 때리시면 어떡합니까.
아: 안 때릴께요. 말로 할께요. 됐죠? 가세요.
따: 자꾸 이러시면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아: 아, 마음대로 하쇼. 신고하든가...
이 중년의 남자는 이 여자가 맞을만해서 맞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이 남자와 티격태격하며 말을 주고받는데 여자 분이 살며시 끼어들며 괜찮다는 듯 한 표정을 보냈다. 그렇다면 굳이 내가 지나치게 간섭을 할 필요는 없겠다 싶어 되돌아섰다.
(이미지출처: 네이버 bluelcj7님)
그런데 다행히도 경찰차가 지나갔다. 그래서 내가 손가락으로 두 사람이 있는 장소를 지시하며 그 쪽으로 가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이 신고한 것 같았다. 두 남녀와 이야기하던 경찰이 나에게 오더니 신고했느냐고 물어온다. 그래서 나는 내가 신고하지는 않았지만 저 남자가 여자에게 폭력을 행해서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적절한 조치를 해달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경찰은 두 남녀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더니 곧 떠나 버린다.
잠시 후에 이 중년 남자가 몽둥이 한 자루를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나 보고 신고했느냐고 한다. 곧 몽둥이질이라도 할 기세다. 만일 나를 때린다면 나 역시 참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시계를 풀었다. 치고받을 수밖에 없는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내가 이대로 피하지 않고 응전하겠다는 자세를 보이자 남자는 뒤로 물러선다. 맨주먹이 아니라 막대기를 가져온 것에서부터 이미 자신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 자체가 비겁함의 소치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몇 가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남자는 여자가 술집을 나가서 맞을 만해서 때렸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내가 10여분 가량 지켜본 바에 따르면 거의 상습적인 폭력수준이었다. 두 사람모두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남자의 말처럼 여자의 잘못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이라면 심정적으로도 남자에게 동정심이 가기도 한다. 그러나 가정일이라고 폭력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미지출처: http://blog.naver.com/ilsunjo)
물론 최근에는 여러 부분에서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이런 작은 폭력에 대한 관용성이 사회폭력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한다.
학생들과 상담하다보면 어릴 때의 가정 폭력에서 입은 상처가 아주 심각한 경우가 많다. 폭력을 당했던 사람은 폭력 행사에 대해서 둔감해진다. 손쉽게 다른 사람에게 또 다시 폭력을 행사하는 악순환을 거칠 수 있는 것이다.
그 남자와 내가 충분히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경찰의 업무는 범죄자들을 처벌하는데도 있지만, 범죄 상황을 미리 예방해야 하는 의무도 크지 않은가 생각한다.
또 다른 폭력이 일어날 수 있는 순간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없이 그 자리를 떠나 버린 것이다.
만일 이렇게 신고자의 신변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누가 이런 일에 나서려고 하겠는가.
그 사이 옛 직장 동료가 왔다. 그는 불필요하게 간섭했다며 나를 꾸짖는다. 동료의 말처럼 쓸데없는 일이 된 셈인가.
개선되지 않는 가정 내의 폭력문제와 허술한 경찰의 대응에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